산업화와 집약적 농업이 확산되면서 ‘방목’은 낡은 농법으로 치부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와 여러 지역의 전통은 이를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가축이 풀을 뜯고 땅을 밟으며 남기는 흔적이 오히려 숲과 토양, 그리고 다양한 생명에게 터전을 마련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관습으로 여겨지던 방목은 오늘날 생태계 회복과 지역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이끄는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가축 방목, 꿀벌을 살린다…미국 몬태나 연구 결과
미국의 꿀벌 가운데 약 70%가 땅속에 둥지를 짓습니다. 이들은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기 위해 흙이 드러난 작은 땅을 필요로 하지만, 낙엽이나 잔해가 쌓이면 둥지를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지난해 미국 몬태나 주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가축 방목이 이 같은 토종 꿀벌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양이나 소가 풀을 뜯고 땅을 밟으며 낙엽을 제거해 맨땅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연구 결과, 방목지에는 땅속에 둥지를 짓는 꿀벌이 방목하지 않은 곳보다 2~3배 더 많았습니다.
벌 둥지의 지하 도식 ⓒMontana States University
연구를 이끈 몬태나 주립대 곤충학자 헤이즈 구지(Hayes Goosey)는 “방목은 토종벌뿐 아니라 새들이 먹는 곤충의 다양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소가 있는 것은 생태계에 이롭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농무부(USDA) 보전효과평가프로젝트(CEAP) 지원을 받은 이번 연구는, 올바른 방목이 야생동물 서식지 보전, 토양 건강 개선뿐 아니라 매개자 보전에도 기여한다는 점을 입증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 농식품 공급의 최대 5,500억 달러가 꿀벌 등 매개자 덕분에 유지되고 있으며, 이들은 야생동물 먹이와 건강한 토양 조성에도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농약, 질병, 서식지 파괴로 매개자는 전 세계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지속가능한 방목 관리가 사람과 지구 모두에게 중요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돼지 방목, 숲을 살린다…영국 뉴포레스트의 파니지 전통
영국 남부 뉴포레스트(New Forest)에는 가을이 오면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독특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지역 커머너(commoner)들이 돼지를 숲에 풀어놓아 도토리와 너도밤나무 열매를 먹게 하는 ‘파니지(pannage)’ 전통입니다.
언뜻 보면 옛 시절의 풍습처럼 보이지만, 파니지는 단순한 문화유산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숲과 생태계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New Forest
뉴포레스트 국립공원 관리당국에 따르면, 돼지는 다른 가축과 달리 도토리를 안전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숲에 도토리가 지나치게 많으면 조랑말이나 소가 중독될 수 있는데, 돼지가 이를 줄여주면서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또한 돼지들이 땅을 헤집으며 먹이를 찾는 과정에서 흙이 뒤집히고 산소가 공급돼 토양이 건강해지고, 잡초가 뿌리째 뽑히며 숲 바닥의 생물 다양성도 높아집니다.
이 전통은 숲만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도토리를 먹고 자란 돼지는 ‘뉴포레스트 파니지 포크’라는 특별한 지역 브랜드 고기로 판매되며, 고소한 풍미와 깊은 색으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파니지 햄이 영국 정부의 지리적 표시 보호제(PGI)에 등록돼 정통성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Pannage Pork ⓒNew Forest
파니지는 단순한 전통을 넘어 생태계 보전과 지역 경제, 그리고 문화유산을 동시에 지켜내는 지속 가능한 방목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숲과 사람을 살린다…이베리아반도의 ‘데헤사’ 전통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광활한 초원 숲, 데헤사(Dehesa, 포르투갈에서는 ‘몬타도’)는 단순한 목초지가 아닙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이 전통적인 토지 이용 방식은 가축 방목·농업·임업이 어우러진 복합 생태계이자 문화경관입니다.
데헤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참나무 숲입니다. 특히 홀름 오크와 코르크 참나무가 주를 이루며, 이 나무들이 매년 가을 떨어뜨리는 도토리는 이베리코 흑돼지의 주요 먹이가 됩니다. 돼지는 도토리를 먹으며 살이 오르고, 이렇게 키워낸 돼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급 햄 하몽 이베리코의 원료가 됩니다. 특히 ‘도토리 100%’로 사육된 돼지의 햄은 높은 가격에 거래되곤 합니다.

하지만 데헤사가 중요한 이유는 육류 생산만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소, 양, 염소는 숲 속과 초지를 오가며 풀을 뜯고 땅을 밟아주면서 숲의 균형을 지켜냅니다. 또 돼지는 도토리를 먹어 치우면서 다른 가축이 중독되는 일을 막습니다. 참나무는 약 250년 동안 자라도록 관리되고, 코르크는 9~12년에 한 번씩 채취되어 또 다른 주요 소득원이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데헤사는 토양 건강, 생물 다양성, 산림 보전을 동시에 달성해온 전통적인 생태계 관리 방식입니다.
무엇보다 데헤사는 야생동물의 피난처이기도 합니다. 멸종위기종인 스페인 황제수리를 비롯해 다양한 조류와 곤충이 이곳에 서식합니다. 인간의 관리와 가축의 방목이 맞물려 만들어낸 경관이 곧 생태계의 터전이 된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데헤사를 가리켜 “지속 가능한 농업과 보전이 공존하는 모범 사례”라고 평가합니다. 코르크와 고급 육류는 농가의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고, 숲은 살아 있는 전통과 자연유산으로 보존됩니다.
이베리아 반도의 데헤사를 가리켜 오늘날 많은 이들은 “가축을 풀어 기르는 오래된 방식이야말로, 사람과 숲이 함께 살아가는 가장 현대적인 해법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산업화와 집약적 농업이 확산되면서 ‘방목’은 낡은 농법으로 치부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와 여러 지역의 전통은 이를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가축이 풀을 뜯고 땅을 밟으며 남기는 흔적이 오히려 숲과 토양, 그리고 다양한 생명에게 터전을 마련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관습으로 여겨지던 방목은 오늘날 생태계 회복과 지역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이끄는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가축 방목, 꿀벌을 살린다…미국 몬태나 연구 결과
미국의 꿀벌 가운데 약 70%가 땅속에 둥지를 짓습니다. 이들은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기 위해 흙이 드러난 작은 땅을 필요로 하지만, 낙엽이나 잔해가 쌓이면 둥지를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지난해 미국 몬태나 주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가축 방목이 이 같은 토종 꿀벌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양이나 소가 풀을 뜯고 땅을 밟으며 낙엽을 제거해 맨땅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연구 결과, 방목지에는 땅속에 둥지를 짓는 꿀벌이 방목하지 않은 곳보다 2~3배 더 많았습니다.
연구를 이끈 몬태나 주립대 곤충학자 헤이즈 구지(Hayes Goosey)는 “방목은 토종벌뿐 아니라 새들이 먹는 곤충의 다양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소가 있는 것은 생태계에 이롭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농무부(USDA) 보전효과평가프로젝트(CEAP) 지원을 받은 이번 연구는, 올바른 방목이 야생동물 서식지 보전, 토양 건강 개선뿐 아니라 매개자 보전에도 기여한다는 점을 입증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 농식품 공급의 최대 5,500억 달러가 꿀벌 등 매개자 덕분에 유지되고 있으며, 이들은 야생동물 먹이와 건강한 토양 조성에도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농약, 질병, 서식지 파괴로 매개자는 전 세계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지속가능한 방목 관리가 사람과 지구 모두에게 중요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돼지 방목, 숲을 살린다…영국 뉴포레스트의 파니지 전통
영국 남부 뉴포레스트(New Forest)에는 가을이 오면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독특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지역 커머너(commoner)들이 돼지를 숲에 풀어놓아 도토리와 너도밤나무 열매를 먹게 하는 ‘파니지(pannage)’ 전통입니다.
언뜻 보면 옛 시절의 풍습처럼 보이지만, 파니지는 단순한 문화유산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숲과 생태계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뉴포레스트 국립공원 관리당국에 따르면, 돼지는 다른 가축과 달리 도토리를 안전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숲에 도토리가 지나치게 많으면 조랑말이나 소가 중독될 수 있는데, 돼지가 이를 줄여주면서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또한 돼지들이 땅을 헤집으며 먹이를 찾는 과정에서 흙이 뒤집히고 산소가 공급돼 토양이 건강해지고, 잡초가 뿌리째 뽑히며 숲 바닥의 생물 다양성도 높아집니다.
이 전통은 숲만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도토리를 먹고 자란 돼지는 ‘뉴포레스트 파니지 포크’라는 특별한 지역 브랜드 고기로 판매되며, 고소한 풍미와 깊은 색으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파니지 햄이 영국 정부의 지리적 표시 보호제(PGI)에 등록돼 정통성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Pannage Pork ⓒNew Forest
파니지는 단순한 전통을 넘어 생태계 보전과 지역 경제, 그리고 문화유산을 동시에 지켜내는 지속 가능한 방목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숲과 사람을 살린다…이베리아반도의 ‘데헤사’ 전통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광활한 초원 숲, 데헤사(Dehesa, 포르투갈에서는 ‘몬타도’)는 단순한 목초지가 아닙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이 전통적인 토지 이용 방식은 가축 방목·농업·임업이 어우러진 복합 생태계이자 문화경관입니다.
데헤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참나무 숲입니다. 특히 홀름 오크와 코르크 참나무가 주를 이루며, 이 나무들이 매년 가을 떨어뜨리는 도토리는 이베리코 흑돼지의 주요 먹이가 됩니다. 돼지는 도토리를 먹으며 살이 오르고, 이렇게 키워낸 돼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급 햄 하몽 이베리코의 원료가 됩니다. 특히 ‘도토리 100%’로 사육된 돼지의 햄은 높은 가격에 거래되곤 합니다.
하지만 데헤사가 중요한 이유는 육류 생산만이 아닙니다. 이곳에서 소, 양, 염소는 숲 속과 초지를 오가며 풀을 뜯고 땅을 밟아주면서 숲의 균형을 지켜냅니다. 또 돼지는 도토리를 먹어 치우면서 다른 가축이 중독되는 일을 막습니다. 참나무는 약 250년 동안 자라도록 관리되고, 코르크는 9~12년에 한 번씩 채취되어 또 다른 주요 소득원이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데헤사는 토양 건강, 생물 다양성, 산림 보전을 동시에 달성해온 전통적인 생태계 관리 방식입니다.
무엇보다 데헤사는 야생동물의 피난처이기도 합니다. 멸종위기종인 스페인 황제수리를 비롯해 다양한 조류와 곤충이 이곳에 서식합니다. 인간의 관리와 가축의 방목이 맞물려 만들어낸 경관이 곧 생태계의 터전이 된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데헤사를 가리켜 “지속 가능한 농업과 보전이 공존하는 모범 사례”라고 평가합니다. 코르크와 고급 육류는 농가의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고, 숲은 살아 있는 전통과 자연유산으로 보존됩니다.
이베리아 반도의 데헤사를 가리켜 오늘날 많은 이들은 “가축을 풀어 기르는 오래된 방식이야말로, 사람과 숲이 함께 살아가는 가장 현대적인 해법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