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가들]아름다운 자연 속 자연인의 농장, 흙사랑농장

높은 산 아래 펼쳐진 논과 밭,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남해 바다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이곳은 천혜의 고장 경남 사천시다. 사천 시내에서 차로 약 25분 정도 굽이굽이 시골길을 따라가다 보면 향긋한 흙내음과 발효향이 물씬 풍기는 곳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오늘 소개할 ‘흙사랑농장’이다.

흙사랑농장 입구


‘흙을 사랑함은 자연 사랑의 근본’이라는 뜻에서 따온 이름인 흙사랑농장. 그 이름에 걸맞게 농장 입구에서부터 흙바닥을 맨발로 돌아다니며 우리를 맞이해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흙사랑농장의 강기갑 대표다. 거친 땅을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며 자연인의 포스를 물씬 풍기는 강 대표지만,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강단있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몸이다. 강 대표는 과거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17대와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뒤 고향인 사천시에 내려와 다시 본업인 농업을 하고 있다. 한복을 입고 수염을 기르던 모습에서, 지금은 수염은 유지한 채 남루한 작업 복장으로 열심히 가축들을 기르는 영락없는 농부 그 자체다.


“반갑습니다. 바로 농장부터 둘러볼까요?”

강 대표와 함께 농장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 동물들의 발자국과 분변을 볼 수 있는데, 작은 발자국부터 길 한 가운데에 떡하니 놓인 커다란 분변까지 워낙 각양각색이라 어떤 동물들이 지내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돼지 축사인데, 특이하게도 이곳에는 돼지와 거위가 함께 지내고 있다. 축사 문을 따고 들어가자 가축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돼지는 동물 중에서도 지능이 높은 동물’이라는 말을 증명하듯, 먹이주는 사람을 알아보는지 아기 돼지들이 꼬리를 흔들며 강 대표에게 미소짓고 다가왔다. 그 옆 거위들은 무엇때문에 성났는지 꽥꽥 소리를 질러댔는데, 두 가축이 함께 지내는 것에 대한 질문에 강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함께 지내도 괜찮아요. 오히려 얘네들(돼지)이 엄한 짓 하면 쟤네들(거위)이 군기반장이야 아주”


축사 바깥에서 사람을 반겨주는 돼지와 거위들


원래 돼지들이 지내는 축사는 분뇨 냄새가 지독하다고 하는데, 특이하게도 악취는커녕 발효 매실향이 솔솔 풍겼다. 축사 한 켠에 마련된 거대한 포대자루에서 나는 발효취를 따라가면 매실 부산물들이 담겨 있다. 강 대표가 한 움큼 쥐어 가축들에게 나눠주니 다들 게눈 감추듯이 먹었다.

매실향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돼지를 키우는 농장에서 분뇨 냄새가 일절 없는 것은 이례적인데, 이는 흙사랑농장이 100% 직접 발효한 사료를 먹여 먹이에도 신경씀은 물론 원하는 시간에 축사 바깥을 드나들 수 있도록 하여 스트레스 없이 키우기 때문이다. 이렇게 건강하게 자란 돼지들은 지육으로 지인들에게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흙사랑농장에서는 가축 외에도 7,000여평의 대지에서 1,000여주가 넘는 매실나무를 키운다. 농장에서 생산하는 매실은 유기농 인증까지 받아 친환경적으로 생산되는데, 매실청과 매실고추장, 조청 등으로 가공되어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남은 부산물들은 모아 가축들에게 급여하고, 그렇게 해서 얻은 분뇨를 다시 퇴비로 사용함으로써 완전한 형태의 자연순환농업을 실천하고 있다.


가축들에게 발효 먹이를 주기 위해 준비하는 강 대표

흙사랑농장의 미생물발효 사료배합기


“국회에서 졸업하고 내려오자마자 바로 유기농 인증을 받은 매실입니다. 퇴비가 좋아야 냄새도 덜 나는 것이고, 자연 그대로 만들어진 퇴비가 농토로 들어가면 그게 바로 흙을 살리는 길이죠. 그리고 가축도 살고 나무랑 풀도 살고, 결국엔 사람도 사는 길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자연순환 구조가 자연과 동물은 물론 사람까지 살리는 길이라는 강 대표의 말을 듣자면 그 눈빛에서 굳건한 철학이 느껴진다.

 

대화하는 내내 강 대표는 미생물 발효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강조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강 대표는 흙사랑농장의 대표 외에도 (사)한국마이크로바이옴협회의 상임대표직도 겸임하고 있다고 한다. 이 협회는 미생물을 활용해 축산환경을 개선하고 자연생태계를 복원하는 ‘환경공동체 지원사업’, 미생물 투입을 활용한 ‘축사 악취저감 연구’, 농가와 주민의 상생으로 친환경 생태마을을 가꾸는 ‘농촌 환경공동체 만들기’ 등을 수행하는 친환경축산과 매우 연관이 깊은 단체다.

 

흙사랑농장에서는 여기에 더해 가죽나무, 야생 두릎순, 산초열매 등도 수확하고 있으며, 매실과수원에 좋은 유기물 퇴비를 공급하기 위해 소, 염소 등도 함께 완전 개방된 방사형 농장에서 사육하고 있다. 이렇게 돼지와 거위, 소, 염소 등 워낙 다양한 동물들이 살아가는데, 과거에는 토종닭들도 과수원을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지냈다고 한다. 이렇게 가축들이 돌아다니며 건강에 좋은 유기물을 섭취하고, 동시에 땅에 좋은 퇴비를 남기는 것이다. 흙사랑농장은 꿈같은 방목의 그림과 2만평 이상의 넓은 초지를 바탕으로, 2016년 산지생태축산농장 지정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방목생태축산농장으로 운영 중이다.

 

축사를 나와 강 대표와 매실향을 따라 함께 올라가다보면 길인지 풀밭인지 구분조차 안되는 구간에 접어들게 되는데, 나중에는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수풀이 우거진 공간이 나온다. 강 대표의 말에 따르면 더 올라가보면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새끼를 낳은 암소도 함께 산 위에 올라가 송아지와 함께 풀을 뜯고 있다고 하는데, 다가가기 어려워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산비탈 너머를 바라보며 마음대로 먹고 쉬는 소들이 가득한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농장 방목지에 대해 설명하는 강 대표

이후 강 대표에게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방목 중인 소 사진을 건네받았다


농장 입구 쪽으로 다시 내려오는데, 강 대표가 어딘가로 사라지더니 금세 다시 나타나 매실주스와 매실 진액이 담긴 병을 하나 건넸다.

“멀리 서울서 왔는데 우리 농장의 자랑인 매실맛 한 번 보고 가야죠”

무더운 날씨에 한 줌의 단비같은 매실주스를 들이키며 강 대표의 말을 더 경청했다.

“우리 농장은 앞으로도 욕심없이 동물들에게도 좋고 자연에게도 좋은 방식을 고집할 겁니다. 방목생태축산농장 사업도 그래서 고집하는 거죠. 돈만 생각해서 가축들을 기르고 농산물을 수확하면 자연을 망치는 길이에요. 많은 분들이 친환경축산과 방목생태축산에 대해 더 알고 찾아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주세요. 저는 계속 제가 고집하는 방식대로 농장을 지키고 있겠습니다”

강 대표의 깊은 몇 마디에서 자연과 동물, 사람 모두를 생각하는 올바른 농부의 철학과 진심이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