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정보]한 초지, 여러 가축의 지혜

지속가능한 축산을 만드는 다종방목

방목을 실천하는 축산 농가들의 고민은 대개 초지 한구석을 점령한 잡초나 매년 치솟는 사료비, 그리고 반복되는 구충제 비용 등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생태적·경제적 전환의 기회로 바꾸는 농가들이 있습니다. 소가 이용한 방목지에 양과 염소를 추가하는 등 다양한 종류의 가축을 방목해 축종별로 다른 식성을 활용하는 ‘다종방목(Multi-species Grazing)’이 지속가능한 축산의 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소·양·염소가 만드는 ‘초지 뷔페’… 잡초는 줄고 초지는 다양해진다

다종방목은 말 그대로 한 초지에서 서로 다른 축종을 함께 또는 시차를 두고 방목하는 방식입니다. 캐나다 축산 전문지 Canadian Cattlemen 등의 보도에 따르면, 방목 컨설턴트 리 섹스턴(Lee Sexton)은 농가들이 다종방목을 시작하는 주요 계기 가운데 하나로 ‘잡초 문제’를 꼽습니다. 소는 주로 풀(grasses)을 섭취하는 반면, 양은 광엽성 초본(forbs)을, 염소는 관목과 목질성 식물을 상대적으로 많이 이용합니다. 따라서 소가 잘 먹지 않는 식물을 양이나 염소가 이용하도록 하면 초지의 식생을 보다 폭넓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캐나다 앨버타주의 월드론 목장(Waldron Ranch)입니다. 이곳에서는 소 방목지에 어린 양을 추가로 방목해 소가 잘 먹지 않는 잎대극(Leafy spurge)과 같은 잡초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약 300마리의 어린 양을 활용한 방목은 잡초 관리에 도움을 주었으며, 초지 관리 과정에서 제초제 의존도를 낮추는 데도 기여했습니다. 다만 이 사례 역시 양만으로 잡초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물학적 방제와 방목 관리 등을 함께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afe35390d2fbf.png ⓒWaldron Ranch


이처럼 가축마다 다른 식성을 활용하면 화학적 방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축산 전문 팟캐스트 ‘Casual Cattle Conversations’에 출연한 방목 전문가 케빈 린치(Kevin Lynch)는 다종방목을 적용한 뒤 약 2년 만에 조사료의 질이 시각적으로 개선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러시안 시슬(Russian thistle) 등의 특정 종이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면 지난 30년 동안 방목지에 제초제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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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ual Cattle Conservations 


기생충 순환을 약화시키고 토양 건강을 돕는 방목 시스템

다종방목의 장점은 식생 관리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소와 양·염소는 주요 위장관 기생충 가운데 상당수가 서로 다른 숙주 특이성을 갖기 때문에, 서로 다른 축종을 교대로 방목하면 목초지에 남아 있는 일부 기생충의 감염성 유충 부담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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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모든 기생충이 축종별로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양과 염소는 상당수의 기생충을 공유하기 때문에, 다종방목이 구충제를 완전히 대체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다종방목의 효과는 축종 구성과 방목 시기, 휴식 기간, 지역의 기생충 발생 상황 등을 고려해 판단해야 합니다.

 

토양 측면에서도 적절한 순환방목은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방목 후 식물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도록 휴식 기간을 확보하면 식물의 생육과 토양 유기물 축적을 돕고, 장기적으로 토양 탄소 저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토양 탄소의 변화는 토양의 종류와 기후, 식생, 방목 강도와 휴식 기간 등 다양한 조건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모든 방목지에서 동일한 결과가 나타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 수표’가 만드는 경영 안정성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다종방목은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소고기 생산에만 의존하는 농가가 양이나 염소, 가금류 등을 추가하면 출하 시기와 판매 품목을 다양화할 수 있습니다. 특히 출하 주기가 상대적으로 짧은 축종이나 계란과 같은 가금류 생산을 병행할 경우, 단일 품목의 가격 변동에 대한 위험을 분산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새로운 축종을 도입하는 데에는 비용과 관리상의 과제가 따릅니다. 소 전용으로 설치된 울타리를 양이나 염소에 맞게 조정해야 할 수 있고, 급수시설과 축사, 포식자 방지 시설, 가축을 이동시키기 위한 핸들링 시설 등에 추가적인 투자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축종을 관리하기 위한 노동력과 전문 지식도 요구됩니다.

 

따라서 다종방목이 모든 농가에서 경제성을 보장하는 만능 해법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농장의 규모와 토지 조건, 기존 시설, 노동력, 지역의 시장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도입 여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존 초지에서 활용하지 못했던 식생을 가축의 먹이로 전환하고, 잡초 관리와 수익원 다각화를 동시에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검토할 만한 선택지입니다.

 

골칫거리였던 잡초를 가축의 먹이로 활용하고, 축종마다 다른 생태적 습성을 방목 관리에 접목하는 다종방목. 이는 단순히 여러 가축을 함께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초지의 자원을 보다 입체적으로 활용하고 농가의 비용과 경영 위험을 분산하는 재생농업적 접근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완벽한 해법은 아니지만, 지속가능한 축산을 고민하는 농가라면 주목할 만한 새로운 방목 전략입니다.

 

 

자료·출처|Canadian Cattlemen, Casual Cattle Conversations 등 관련 자료 종합·재구성을 바탕으로 제작된 글입니다.